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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신혼 부부 재테크

다시부자 2024. 1. 25. 13:10


결혼준비

2009년 저는 결혼할 때 아내와 합하여 4,000만 원의 자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혼에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하여 예단, 혼수, 패물 등을 최소화하고 종잣돈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사실 둘 다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작은 식당을 꾸리시며 어렵게 저를 키위 주셨고, 처갓집은 연로하신 처할머니, 파킨슨병이 있으신 장인, 그리고 경제적 자립이 안되고 있는 처남이 있었습니다. 예단은 100만 원 정도로 형식만 취했고, 혼수는 삼성전자 대리점에 근무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최저가보다 싸게 가성비 좋은 저렴한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결혼반지는 18K 큐빅반지로 다이아몬드를 대체했습니다. 보통 일생에 한번 하는 결혼 때 맞춘다는 명품시계등은 생각도 안 하고, 문정동 할인매장에서 정장 한벌씩 샀습니다. 그 당시 결혼하는 주변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종잣돈의 중요함을 생각하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남들과 같게 살아간다면 더 나아질 수는 없습니다. 당장 부족하더라도 목표를 세우고 아끼며 살다 보면 스노볼처럼 자산에 자산이 더해집니다.

신혼집 구하기

신혼집을 구할 때 보통 아파트를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변두리 작은 아파트 전세보증금이 3억 정도였습니다. 직장생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아니면 그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부동산이 자산을 늘려 줄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부가 모은 4천만 원에서 결혼에 천만 원 안쪽으로 지출을 하고, 저희 부모님이 보태주신 3천만 원 그리고 대출 4천만 원으로 총 1억 정도의 자금으로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도로를 이용한 교통이 편리하고 서울 송파와 강남이 가까운 성남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발품을 팔아 구한 집은 1층에 족발집이 있는 상가건물 2층이었습니다. 이곳에 보금자리를 정한 이유는 아파트 분양을 위함도 컸습니다. 그리고 사실 서울에 갈 돈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보금자리주택, 반값주택 등이 한참 이슈였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 송도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이곳의 분양열기는 아주 뜨거웠습니다. 저도 여러 번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총각 때 송파 반지하에 살았기 때문에 서울에 분양하는 곳마다 지원을 했지만 다 떨어졌습니다. 강남 세곡지구, 헌릉지구,  자곡지구 모두 떨어지고 서초 내곡지구도 떨어졌습니다.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어서 장기전세를 신청해도 떨어졌습니다. 큰 이유는 저는 경기도민이기 때문에 1순위에서 다 끝나기 때문입니다. 2008년도 시작된 위례분양 중 성남시에 속한 아파트들의 분양이 시작됐습니다. 2013년 분양공고가 있던 자연 앤 이 편한 래미안에 당첨이 됐습니다. 이때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매스컴에는 연일 일본 부동산 붕괴 관련 다큐가 나오고 사람들은 부동산이 버블이다. 위험하다. 고가다.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제 지인들은 분양받은 저를 걱정해주기도 하고 왜 그러는지 이상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30평이 4억 정도였습니다. 제 생각은 지금 가격에서 떨어져 봐야 2-3억. 어차피 내가 살 집인데 대출 이자를 월세로 생각하기로 하고 진행했었습니다. 그 뜨겁던 분양시장에서 이 아파트는 제가 1.6:1의 낮은 경쟁률을 뚫고 분양을 받았습니다.

또 이때 분양을 했던 아파트는 정부의 세금혜택도 있었습니다. 양도세 면제. 9억 원 이하의 신축·미분양주택, 1 가구 1 주택자가 소유한 주택으로서 9억 원 이하 국민주택규모(85㎡)의 주택을 취득한 후 5년 이내에 양도하면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
결혼 4년 만에 초기 부모님 지원포함 6천만 원에서 2억 정도의 자금을 만들고 아이도 둘 낳고 내 집을 갖게 됐습니다.
나중에 이 집은 8억 정도에 매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재산 6억정도 모았네요. 다음 글에서 이후 이야기도 이어 나가겠습니다